미인

2012/01/25 19:43


<흔들리는 바위>에 나왔던 소녀 오하쓰와 산학을 연구하는 청년 우쿄노스케가 다시 나오는 작품이다.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 중 지금까지 읽은 작품들은 엉성한듯한 무사 헤이시로와 천재 소년 유미노스케가 사건을 해결하는 시리즈 물과 오하쓰와 우쿄노스케가 콤비가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시리즈 물로 되어있다. 물론 아직 읽지 않은 에도 시대물도 이와 같이 동일한 인물이 나오는 시리즈 물로 되어 있는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어쨌든 지난번에 읽은 작품 속에서 알게 되어 왠지 친숙해졌던 인물이 다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식은 꽤나 마음에 든다. 새롭게 전개되는 사건을 풀어가는 재미와 함께, 지난 작품의 인물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두 가지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단순한 사건의 해결을 넘어 등장 인물들 간에 서로 좀더 깊게 연루되는 관계의 발전을 바라보는 재미도 쏠쏠한 셈이다.

<미인>의 원제는 ‘천구풍(天狗風)’으로 잡귀인 ‘천구’가 미모의 여인을 납치해 갈 때 부는 돌풍과 같이 세찬 바람을 뜻한다. 그러므로 좀더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이 소설의 제목은 ‘잡귀바람’일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잡귀에게 납치되는 것을 일본에서는 ‘가미카쿠시’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표현하는데, 일본에서는 190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흔적 없이 사람이 사라지는 것을 ‘실종’이라는 단어보다는 잡귀에게 잡혀갔다는 의미의 ‘가미카쿠시’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했다고 한다. 몇 년 전 개봉했던 지브리 스튜디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도 원제는 <센과 치히로의 카미카쿠시>라 하니 이 애니메이션 작품을 본 독자들에게는 ‘가미카쿠시’라는 개념이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될 듯도 싶다.

<미인>에서는 두 명의 처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다. 첫 번째 사건은 결혼을 앞둔 처녀를 아버지가 살해하고 시신을 은닉한 사건으로 처음에는 여겨진다. 그 이후 집중 조사를 받던 아버지가 자신이 딸을 살해했음을 자백하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는 일까지 발생한다. 두 번째 사건은 돈을 노린 패거리들의 유괴 사건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돈과 처녀를 맞바꾸는 자리에 불어 닥친 돌풍과, 그 돌풍 속에 나타난 관음보살의 모습을 한 잡귀의 등장으로 인해 단순한 유괴사건으로 보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진다. 그런 혼돈의 와중에 가미카쿠시를 당해 끌려간, 붉은 벚꽃이 만발한 곳에 대한 꿈을 꾸었던 오하쓰의 등장으로 두 사건이 모두 ‘가미카쿠시’라는 것이 밝혀지고 잡혀간 두 명의 처녀를 구출하기 위해 잡귀인 천구의 근원을 찾기 위한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는 능력이 있는 오하쓰가 주요 인물로 나오는 것이기에 판타지 같은 설정이 그리 새로울 것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귀가 나타나 미모의 처녀들을 4차원의 세계 같은 붉은 벚꽃이 만발한 공간으로 납치해 간다는 설정은 너무 생경하게 느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첫째로는, 두 처녀가 왜 가미카쿠시를 당해야만 했는지, 두 처녀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 지를 찾는데 집중하고 둘째로는 가미카쿠시를 하는 ‘천구’의 정체를 찾아내는 데 집중하며 다소 황당한 설정 자체에 그리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가미카쿠시를 당한 이유가 주된 관심사이지 가미카쿠시를 당해 끌려간 4차원 공간은 어디에 존재하는 지, 그곳은 어떻게 갈 수 있고, 왜 벚꽃이 만발한지 등의 이유가 관심사는 아닌 것이다.

<미인>은 그렇게 가미카쿠시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가, 결국 그 모든 근원에는 외적인 미에만 집착하는 편집증세와 타인에 대한 질투심이 자리잡고 있음을 들추어낸다. 가장 아름다운 곳에 가장 추한 것이 존재하는 모순적인 상황을 통해 위선이라든지 허세와 같은 것들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겉모습이 아닌 본질에 집중하지 못하고, 사람 그 자체로서가 아닌 남들과의 비교를 통한 열등감에 매몰되다간 자아 전부를 상실해 버릴 수도 있다는 점을 에둘러 말하고자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미인>에서 한가지 더 반가운 점이라면 오하쓰를 돕는 역할로 등장하는 고양이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는 일반 길 고양이와 다름 없지만 주인공 오하쓰는 고양이와의 대화가 가능하다. 그리하여 데쓰, 방울이 그리고 도사라 불리는 세 마리 고양이와 오하쓰가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가미카쿠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데 그 모습이 꽤나 흥미롭다. 말이 통하는 고양이를 단순히 소설 속에 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고양이의 습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묘사에서는 미야베 미유키의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 쓰는 섬세함 또한 발견할 수 있다.

소녀 오하쓰와 산학 청년 우쿄노스케. 아마 이 둘이 메인으로 나오는 다음 작품에서는 필히 둘 사이의 사랑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며 이야기가 좀 더 재미있어질 것 같다. 아무튼 표지부터 시작해 꽤나 화려한 색감이 펼쳐지고, 또 어떤 면에서는 섬뜩한 면도 종종 보이는 소설 <미인>, 약간 어색한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 시대물은 늘 평균 이상의 수준을 보장해주는 것 같다. 휴일에 쉬면서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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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은 잠들다

2012/01/25 19:42


미야베 미유키의 <용은 잠들다>. 1992년에 제 45회 일본 추리작가 협회 수상작이라 하니 미야베 미유키의 초기작들 중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이야 웬만하면 500페이지 넘기는 것은 기본이고 두 권 이상의 분량이 넘는 작품도 흔하니, 488페이지 분량인 <용은 잠들다>가 다소 짧게 느껴지는 것도 일차적으로는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물론 <용은 잠들다>가 짧게 느껴지는 주된 이유는 결코 짧지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긴 분량 속에서 긴장을 잃고 축축 늘어지는 일이 없이 탄탄한 긴장력을 시종 유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은 잡지사 기자인 고사카와 초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신지라는 아이를 중심으로 하여 이야기가 진행된다. 특히 신지라는 아이는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거나 혹은 사물을 만졌을 때 그 사물과 관련된 과거의 사건을 읽어내는 초능력을 갖고 있는데, 폭우가 쏟아지던 밤에 고사카의 차를 얻어 타게 되며 둘이 처음으로 조우하게 되고 바로 첫 번 째 사건에 같이 개입하게 된다. 

그 첫 번 째 사건이라 함은 바로 그 폭우가 쏟아지던 밤에 물이 차오른 도로의 맨홀 뚜껑을 누군가 열어 놓는 바람에 한 초등학생에 물살에 휩쓸려 맨홀 속으로 빠져들어 사망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신지의 초능력에 힘입어 하루도 되지 않아 맨홀 뚜껑을 열어놓은 범인을 찾아낼 수 있었지만 동시에 신지의 성급한 대응으로 인해 범인들의 자백을 얻어내지 못하는 상황을 맞으며 사건의 종료는 한 없이 미뤄지는 형국을 맞는다.

또 다른 사건은 고사카가 근무하는 잡지사로 배달되는 백지 우편물로 시작되는 사건으로 이후 고사카의 옛 연인이 납치되어 협박을 당하는 사건으로 진화한다. 이 사건의 진행에도 신지의 초능력이 깊게 개입하게 되면서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약간이나마 보이기 시작하지만 첫 번 째 사건과는 달리 납치범을 지목하는 데에는 소설 종반부까지 기다려야 한다. 여기에 더해 두 사건의 진행 초반에 오다 나오야라는, 신지 보다 조금 더 강한 초능력을 가진 인물이 등장하면서 독립적인 별개의 사건으로 여겨지던 두 개의 사건이 관련자들 간의 복잡한 관계로 인해 서로 떼어놓고 다룰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럽게 꼬이기 시작한다.

혹자는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에 종종 등장하는 초능력이라든지 귀신과 같은 현실성 없는 소재의 빈번한 사용이 이야기의 개연성을 떨어뜨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소재의 사용이 미야베 미유키의 무책임함에 따른 것이 아님은 그가 설정한 이야기 속의 인물들의 내외적인 고민과 싸움에 대한 넘치도록 충분한 사례들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용은 잠들다>에서도 미야베 미유키는 초능력이라는 다소 황당하게 보이는 소재를 이야기 구성에 있어 어려운 부분을 쉽게 뛰어넘는 지름길로 사용하기 보다는 그 설정 속에 녹아 있는 고민과 상처들을 통해 현실에 속한 문제들을 약간 우회하며 비춰볼 수 있는 틀로 사용한다. 다시 말하면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은 초능력과 같은 소재를 통해 이야기를 간결하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황의 설정 속에서 인간의 고민과 갈등을 풀어놓는, 그래서 비현실적인 소재가 장벽을 쉽게 뛰어넘는 수단이 아닌 오히려 이야기의 구성을 더욱 복잡하고 풍요롭게 만들어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는 장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용은 잠들다>에서도 역시 가장 큰 고뇌는 내면의 용, 즉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신지와 나오야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고민은 현실의 사람들 내면에 살아 있는 다른 종류의 용에 대한 고민에 대해서도 훌륭한 반추의 소재가 된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한 아이를 죽게 만든 사건, 의도적으로 한 여인을 죽이려 하지만 그 책임은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도록 조작하려 하는 또 다른 사건. 사건속에 깃든 비극은 남이 가지지 못한 능력을 남용하는 것에 있지 않다. 오히려 비극은 자신의 한계를 반추하지 않고 부정하는 자의 오만과 회피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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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

2012/01/24 23:18



<하루살이>는 <얼간이>의 후속작이다. <얼간이>에 나왔던 무사 헤이시로와 그의 양자가 될 예정인 소년 유미노스케를 중심으로 사건을 해결해나간다는 면에서 <얼간이>와 동일한 구성을 갖고 있다. 물론 그 외에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들도 새로 등장한 인물 몇 명 외에는 상당수가 <얼간이>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얼간이>를 통해 뭔가 엉성한 듯, 게으른 듯 보이면서도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을 갖고 있는 헤이시로에게 반했던 독자라면 다시 그를 소설 속에서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하루살이>라는 소설을 읽는 것은 즐거운 일일 것이다. 물론 헤이시로 뿐만 아니라 <얼간이>의 다른 주요 인물들의 이야기가 계속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얼간이>에서 뎃핀 나가야의 관리인으로 있었던 사키치의 과거사와 얽혀 있는, 소설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전작에서 등장한 인물들의 관계가 다시 새롭게 조명되는 것이 가장 큰 매력 포인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루살이>야 말로 제대로 된 연작 소설의 형태를 하고 있다. 서로 독립적인 사건들이 짧게 짧게 이어지면서 마치 동일한 주인공을 내세운 단편 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를 가져다 준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무엇보다 돋보이는 점은 그렇게 서로 독립적인 이야기로 보이던 것들이 결국에는 서로 연관성을 갖게 되며 하나의 큰 장편 소설로 구성되어버리는 미야베 미유키의 구성력에서 찾을 수 있다. 서로 전혀 다른 사건들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연작 소설들 중 이 책의 제목과 동일한 ‘하루살이’라는 제목을 하고 있고 분량도 가장 많은 작품 속의 사건을 해결하다 보니 앞의 독립적 사건들이 하나로 꿰어지게 되는 형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다시 되돌아 봐도 작품 하나 하나는 여전히 독립적인 사건들로 이루어진 소설임에는 틀림 없는데, 고개만 살짝 돌려 다시 보면 하나의 장편 소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확인하는 잔 재미라고나 할까.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 시대물은 미야베 자신이 말했듯이 인간에 대한 정이 있는 사회를 향한 동경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미야베의 소설이니 살인 사건이야 흔치 않게 나오고, 또 에도 시대물이다 보니 귀신이라든지 그 시대의 괴담 같은 다소 섬뜩한 소재들이 자주 작품 속에 나오곤 하지만 결국 작품 속에는 그의 의도대로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섬뜩한 사건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들여다보는 등장 인물들의 지나온 삶의 과정이라든지 숨겨온 감정의 너머에는 안타까움을 동반한 공감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정작 사건을 다 해결해 놓고 보니 범인도 좀 황당하고, 사건의 계기도 좀 황당하다 싶으면서도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계속 찾아서 읽게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사건에 등장한 인물 하나 하나에 대해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충분한 이야기들을 들려주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보통 추리물의 경우에는 누가 범인이고, 그가 어떻게 범행을 모의해서 실행했는가의 전후 과정의 치밀한 구성에 관심을 갖게 되고 또 그런 사건의 전말이 기억에 남곤 한다. 그에 비해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은 누가 범인이었는지, 또 왜 그런 범행을 저지르게 되었고, 어떤 식으로 범행을 진행했는가의 기억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가물가물해진다. 반면 사건 속에 등장했던 인물에 대해서는 마치 내가 현실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을 기억하듯이 그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이었는지, 또 성격은 어떠했는지, 전체적인 인상을 어떠했는지 등의, 사람에 대한 기억이 꽤 오래 가는 것 같다. 아마도 이는 사건을 중심으로 필요한 인물들을 상황에 맞춰 배치하는 것이 아닌 인물 하나 하나에 대한 디테일한 구성을 기반으로 사건을 그에 맞추는 것처럼 보이는 미야베의 구성의 특징에서 비롯된 것일 터이다. 그래서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무사 헤이시로를 또 다른 작품에서 만나고 싶다 느끼는 것도 어쩌면 그가 또 어떤 사건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보다는 그가 또 허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방에서 뒹굴 대고, 오토쿠의 가게에 들러 한담을 나누고 하는 일상 속의 그의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 때문일 것이다.

두 권으로 이루어진 짧지 않은 작품인데 어쩌다 보니 또 정신 없이 읽어버렸다. <얼간이> 읽고 난 후, 미야베의 에도 시대물이 맘에 들고, 또 무사 헤이시로의 어리숙함이 맘에 들었다면 <하루살이>는 꼭 읽어야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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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2012/01/18 18:37


미야베 미유키 소설이니 사람 하나도 죽지 않는 정도의 잔잔함은 기대하기 어려울 테다. <누군가>에도 역시 두 건의 죽음이 나온다. 하나는 자전거로 우연히 사람을 치어서 죽게 한 현재의 사건과, 나머지 하나는 오래 전 우발적으로 벌어졌으나 그 동안 은폐되어온 과거의 살인 사건 하나이다. 

두 건의 죽음이 소재로 사용된 이야기에 이런 말을 하는 게 언뜻 보면 괴상하다 싶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누군가>는 소시민으로 살다 세상을 떠난 한 남자의 인생을 세세한 부분까지 들여다보며 평범한 한 남자의 인생을 특별하게 만드는, 어떻게 보면 미야베 미유키의 소시민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소설이다.

몇 년 전 읽었던 <이름 없는 독>이라는 대기업 홍보부 직원인 스기무라 사부로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읽었는데, <누군가>는 <이름 없는 독>의 전작 소설에 해당한다. 동일한 인물과 배경을 중심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구성인데, 전작, 후작의 순서 구분 없이 읽어도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

<누군가>에 나오는 두 건의 죽음은 비록 사람이 죽은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그리 큰 충격을 전달하지 않는다. 하나는 단순한 사고였고, 다른 하나는 수십년전에 일어났다는 시차에서 오는 거리감과 함께 ‘충분히 그럴만했다’는 공감대가 우선 앞선다. 이보다는 사고로 죽은 가지타씨의 두 딸 사토미와 리코의 숨겨진 과거와 현재의 모습의 발견을 통한 충격에서의 의미가 더 크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평범한 한 사람의 인생의 숨겨진 뒷모습에서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는 재미를 선사하는 미야베 미유키. 굴러가는 돌 하나에서도 숨겨진 이야기를 통해 상상하지 못했던 재미를 끄집어 낼 수 있을 것 같은 그녀의 재능을 다시 한 번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누군가>, 주말의 한나절을 소파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만든 매력적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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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바위

2012/01/18 18:18


<흔들리는 바위>의 소재로 사용된 <가나데혼 주신구라>. 일본의 국민적인 고전이란다. 물론 나로서는 이 소설을 통해 처음 듣는 이야기다. 주신구라는 1701년 아사노 나가노리라는 무사가 기라 요시나카라는 무사에게 칼을 들어 공격했으나 실패한 것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다. 그 사건에 대한 책임으로 아사노 나가노리는 할복의 명을 받고 바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1년 후 아사노 나가노리의 수하에 있던 47명의 무사가 자신들의 주군이었던 아사노의 복수를 하기 위해 기라 요시카나의 저택에 난입하여 복수를 갚는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47명의 무사는 다시 전원 할복의 명을 받고 죽음을 맞는다는 이야기다.

<흔들리는 바위>는 이 주신구라의 이야기 속의 한 인물의 원혼이 100년이 지난 후에 사람에게 씌어 일어나는 일을 그리고 있다. 소설은 초를 팔고 다니며 살고 있는 홀아비 기치지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 기름통에 빠져서 죽어있는 한 여자 아이의 사건으로 이야기가 급하게 연결되며 진행된다.

사건을 풀어가는 인물은 오하쓰라는 열 여섯 살 소녀와 산학에 뜻이 있는 우쿄노스케라는 청년인데, 오하쓰라는 소녀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환상을 보는 눈을 갖고 있다. 기름통에 아이가 빠져 있는 환상을 본 것도 오하쓰고, 기치지로부터 나는 생선기름 냄새에 뭔가 있다는 직감을 하게 되는 것도 오하쓰다. 우쿄노스케의 직접적인 역할의 비중은 높지 않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다른 소설에서와 유사하게 주요 인물의 콤비 설정은 두 사람의 대화 속에서 사건의 진상이 자세하게 서술되거나, 인물들의 고민들을 풀어 놓으며 이야기에 맛을 더하는 역할을 한다.

이 소설의 소재가 된 <가나데혼 주신구라>라는 일본의 국민적인 고전에 대해 익숙하지 않아서인가. 막상 모든 사건의 실마리가 잡혀 사건이 해결되는 마지막 부분에 와서는 ‘겨우 이런 얘기였어?’라는 다소 시시한 느낌을 받았다. 주신구라라는 소재가 좀 더 익숙했고, 이미 다른 매체들을 통해 여러 번 접해본 이야기였다면 그 익숙한 이야기를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하고 풀어내는 재해석의 맛을 느낄 수 있었을 테지만 이 소설을 통해 처음 접하는 이야기였기에 미야베 미유키만의 독특한 시각과 재해석의 미묘한 맛을 느끼기 어려웠던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새로운 해석에 무릎을 치고 유쾌해야 할 시점에 ‘아, 이런 이야기군’하며 고개만 끄덕일 수 밖에 없는 아쉬움이라고 할까.

하지만 그 마지막의 유쾌함을 느끼기 어려운 제약을 제외하고는 소설 전체의 이야기 속에 빠져들어 한 문장 한 문장 정말 달콤하게 읽었다.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고, 귀신이 쓰여 좀비 상태에 빠져 살인을 행하는 부분 등 지극히 일본적인 소재들이 소설 속에 가득하지만 이질적이거나 작위적이라 느끼지 못하고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는 건, 역시 미야베 미유키 고유의 이야기꾼으로서의 능력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재밌게 읽었다. 역시 추천 하나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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