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바위>에 나왔던 소녀 오하쓰와 산학을 연구하는 청년 우쿄노스케가 다시 나오는 작품이다.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 중 지금까지 읽은 작품들은 엉성한듯한 무사 헤이시로와 천재 소년 유미노스케가 사건을 해결하는 시리즈 물과 오하쓰와 우쿄노스케가 콤비가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시리즈 물로 되어있다. 물론 아직 읽지 않은 에도 시대물도 이와 같이 동일한 인물이 나오는 시리즈 물로 되어 있는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어쨌든 지난번에 읽은 작품 속에서 알게 되어 왠지 친숙해졌던 인물이 다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식은 꽤나 마음에 든다. 새롭게 전개되는 사건을 풀어가는 재미와 함께, 지난 작품의 인물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두 가지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단순한 사건의 해결을 넘어 등장 인물들 간에 서로 좀더 깊게 연루되는 관계의 발전을 바라보는 재미도 쏠쏠한 셈이다.
<미인>의 원제는 ‘천구풍(天狗風)’으로 잡귀인 ‘천구’가 미모의 여인을 납치해 갈 때 부는 돌풍과 같이 세찬 바람을 뜻한다. 그러므로 좀더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이 소설의 제목은 ‘잡귀바람’일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잡귀에게 납치되는 것을 일본에서는 ‘가미카쿠시’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표현하는데, 일본에서는 190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흔적 없이 사람이 사라지는 것을 ‘실종’이라는 단어보다는 잡귀에게 잡혀갔다는 의미의 ‘가미카쿠시’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했다고 한다. 몇 년 전 개봉했던 지브리 스튜디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도 원제는 <센과 치히로의 카미카쿠시>라 하니 이 애니메이션 작품을 본 독자들에게는 ‘가미카쿠시’라는 개념이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될 듯도 싶다.
<미인>에서는 두 명의 처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다. 첫 번째 사건은 결혼을 앞둔 처녀를 아버지가 살해하고 시신을 은닉한 사건으로 처음에는 여겨진다. 그 이후 집중 조사를 받던 아버지가 자신이 딸을 살해했음을 자백하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는 일까지 발생한다. 두 번째 사건은 돈을 노린 패거리들의 유괴 사건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돈과 처녀를 맞바꾸는 자리에 불어 닥친 돌풍과, 그 돌풍 속에 나타난 관음보살의 모습을 한 잡귀의 등장으로 인해 단순한 유괴사건으로 보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진다. 그런 혼돈의 와중에 가미카쿠시를 당해 끌려간, 붉은 벚꽃이 만발한 곳에 대한 꿈을 꾸었던 오하쓰의 등장으로 두 사건이 모두 ‘가미카쿠시’라는 것이 밝혀지고 잡혀간 두 명의 처녀를 구출하기 위해 잡귀인 천구의 근원을 찾기 위한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는 능력이 있는 오하쓰가 주요 인물로 나오는 것이기에 판타지 같은 설정이 그리 새로울 것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귀가 나타나 미모의 처녀들을 4차원의 세계 같은 붉은 벚꽃이 만발한 공간으로 납치해 간다는 설정은 너무 생경하게 느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첫째로는, 두 처녀가 왜 가미카쿠시를 당해야만 했는지, 두 처녀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 지를 찾는데 집중하고 둘째로는 가미카쿠시를 하는 ‘천구’의 정체를 찾아내는 데 집중하며 다소 황당한 설정 자체에 그리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가미카쿠시를 당한 이유가 주된 관심사이지 가미카쿠시를 당해 끌려간 4차원 공간은 어디에 존재하는 지, 그곳은 어떻게 갈 수 있고, 왜 벚꽃이 만발한지 등의 이유가 관심사는 아닌 것이다.
<미인>은 그렇게 가미카쿠시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가, 결국 그 모든 근원에는 외적인 미에만 집착하는 편집증세와 타인에 대한 질투심이 자리잡고 있음을 들추어낸다. 가장 아름다운 곳에 가장 추한 것이 존재하는 모순적인 상황을 통해 위선이라든지 허세와 같은 것들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겉모습이 아닌 본질에 집중하지 못하고, 사람 그 자체로서가 아닌 남들과의 비교를 통한 열등감에 매몰되다간 자아 전부를 상실해 버릴 수도 있다는 점을 에둘러 말하고자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미인>에서 한가지 더 반가운 점이라면 오하쓰를 돕는 역할로 등장하는 고양이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는 일반 길 고양이와 다름 없지만 주인공 오하쓰는 고양이와의 대화가 가능하다. 그리하여 데쓰, 방울이 그리고 도사라 불리는 세 마리 고양이와 오하쓰가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가미카쿠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데 그 모습이 꽤나 흥미롭다. 말이 통하는 고양이를 단순히 소설 속에 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고양이의 습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묘사에서는 미야베 미유키의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 쓰는 섬세함 또한 발견할 수 있다.
소녀 오하쓰와 산학 청년 우쿄노스케. 아마 이 둘이 메인으로 나오는 다음 작품에서는 필히 둘 사이의 사랑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며 이야기가 좀 더 재미있어질 것 같다. 아무튼 표지부터 시작해 꽤나 화려한 색감이 펼쳐지고, 또 어떤 면에서는 섬뜩한 면도 종종 보이는 소설 <미인>, 약간 어색한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 시대물은 늘 평균 이상의 수준을 보장해주는 것 같다. 휴일에 쉬면서 잘 읽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