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을 한지 이제 만 6개월이 지났다. 어제가 만 180일이 되는 날이었다.
어제 회사 저녁 메뉴로 쇠고기무국이 나왔다. 물론 쇠고기 무국을 제외한 다른 반찬들만 식판에 받아왔다. 회사 후배 동료가 물었다. 채식을 한다 해서 고기는 안먹더라도 국물정도는 먹어도 되는거 아니냐고. 대답했다. 국물도 결국 고기가 우러나온 것이기 때문에 먹지 않는거라고. 그러자 다시 동료가 소고기 무국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런 건 고기가 들어갔다고 해도 몸에 좋은 것 같은데 왜 안먹냐고. 대답했다. 채식이라는게 꼭 육식이 몸에 해롭고, 그 반면 채식이 몸에 좋다고 생각해서 하는것만은 아니라고, 나 또한 소고기무국이 몸에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후배가 더욱 의아해하며(그동안 정말 궁금했나보다)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럼 몸에도 좋고 맛있기도 한 고깃국을 그냥 먹지 그러냐고. 대답했다. 그냥 여러가지 이유들때문에 맛있기도 하고, 몸에 좋기도 한 고기지만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그냥 안먹기로 결정했고, 큰 무리 없이 잘 지켜오고 있어서 그냥 계속할 생각이라고. 또한 채식을 시작하고, 지금까지 유지해오게 한 개인적인 신념들은 현재로서는 '내 신념은 바로 이것이오!'라고 내세울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지 못하고 헛점이 너무 많이 노출된 상태이지만 계속해서 잘 다듬어간다면 좋은 방향의 신념으로 만들어져 갈것이라는 기대가 있다고.
그동안 채식한다고 고기를 안먹는 내 모습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나보다. 다른 의도에서가 아닌 순수한 궁금증에서 비롯된 것임을 보이는 정중함(?)으로, 도대체 고기를 안먹고 채식하는 이유가 뭔지 정말 궁금하다고 물었다. 자기로서는 고기를 안먹고 사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도대체 무슨 이유가 고기를 먹지 않고 채식을 하게 만드는지 정말 궁금하다고 다시 물었다.
내가 채식을 시작하게 된건 사실 여러가지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쳐 비롯된 것이다. 뭐 다들 한번쯤은 들어봤을만한 것들이다. 육식보다 채식이 몸에 좋다는 이야기도 약간 영향을 줬고, 고기 생산의 에너지 비효율성에 대한 것도 영향을 줬고, 이에 따른 환경과 인간의 식탁에 올라가기 위한 유일한 목적 하나만을 위해 극악한 환경속에서 키워지고, 무자비하게 도살되는 동물들의 생명에 대한 측은함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고기 수요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고, 이에 따른 공급량을 맞추기 위해 사육 및 유통과정이 점차 왜곡되어가며 발생하는 문제점들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았다.
이런 여러가지 이유들이 내가 채식을 결정하고 지금까지 무리없이(어쩔수 없는 상황에서의 유두리도 가지면서) 채식을 유지해오게 만들었고, 앞으로도 채식을 계속 유지해나가게 할듯 하다. 하지만 아직도 누군가 나에게 '무슨 이유로 채식을 하게 되었냐'고 묻게 되면 자신있게 '이러이러한 이유로 인해 채식을 하게 되었다'라고 말하기에는 내 스스로가 쭈뼛쭈뼛하다. 아직까지는 채식을 하게 만든 여러 신념들이 어느정도 모양새를 갖출 정도로 다듬어지지 않았기에 이를 말하다보면 스스로 모순에 빠지게 되기 십상이다.
육식보다 채식이 건강에 더 좋다는 신념은 과학적 증거가 뒷받침되어야 하고, 그 부분에 있어서는 내가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쉽사리 채식의 이유로 들수는 없다. 개인적 경험에 따른 것도 채식이 육식보다 몸에 더 좋다는 결론은 아직 얻은바 없고 좀더 방어적인 결론으로 육식을 하지 않고 채식을 해도 몸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정도만 얻었을 뿐이다. 사실 이 부분은 채식이 다소 몸의 기력을 약하게 한다던지 하는 부분의 영향은 있더라도 몸에 치명적인 영향만 끼치지 않는 수준이라면 몸의 (필요없을정도로)건강함은 다소 포기하고라도 채식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다. 물론 육류생산과 같은 방식으로 대량생산되고 있는 채소류들이 과연 건강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논의는 또 다른 이야기이다. 결국 몸의 건강을 위한 채식이라는 논리는 가장 설득력이 떨어지고, 그 확실한 증거도 없는 논리일듯 싶다. '채식을 하고 나니 몸이 이렇게 건강해졌어요' 이런식의 기대는 금물이다.
고기생산의 에너지 비효율성과 환경파괴, 고기 1kg을 얻기위해 소비해야 하는 곡물의 양을 거론하며 이를 채식의 이유로 내세우기에는 아직 내 삶의 다른 부분에서 이정도로 에너지 비효율성이나 환경파괴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실천에 옮기는 부분이 없기에 쉽사리 이를 채식의 이유로 거론하기가 쑥스럽다. 이런 이유로 채식을 한다고 말하면서, 걸어서 다녀올만한 거리를 혼자 차를 몰고 다니는 모습은 어찌보면 가증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부분은 이러한 신념이 채식뿐 아니라 나의 다른 삶의 영역에도 전염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런 이유로 이 논리는 비록 여전히 내 삶 전체를 볼때에는 모순적인 이유이긴 하지만 채식의 긍정적인 변화 에너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육식을 위해 사육되는 동물들의 비참한 환경과 생명 존중을 채식의 이유로 거론하는 데에는 육류 외에 내가 먹는 다른 음식으로 범위가 확장되면 할 말이 없어진다. 닭고기는 안먹지만 닭장속에서 움직이지도 못한채 갇혀서 낳는 알을 아직까지는 먹고 있는 나로서는 이 부분이 가장 자신없는 부분이다. 달걀뿐만 아니라 우유를 비롯한 각종 유제품 또한 그렇다. 사실 달걀이나 유제품도 먹지 않고 지낼 수는 있을 것 같지만, 이것조차 먹지 않게 되면 직접 지어먹는 식사가 거의 없이 대중식당을 이용하는 상황에서는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거의 없게 된다. 이런 환경에서 무작정 먹지 않겠다고 결심만 하고 대책없이 지내다간 몸 망치기 십상이다. 내가 먹는 음식을 내 스스로 준비하고 만들 수 있는 때가 오기전까지 이 부분은 늘 부족한 상태의 이유로 남아있을 듯 싶다. 또한 내가 하는 채식의 수준이 생선류는 먹는 채식인데, 거의 비슷한 비참한 수준으로 양식되는 해산물들의 경우를 들면 또 문제가 복잡해진다. 이 이유는 여러 논란거리가 될 소지를 갖고 있지만 동물들에게 폐를 끼치면서까지 내 즐거움을 구하고 싶지 않다는 기본적 마음가짐은 크게 나쁠 것 없다고 생각한다.
그 외에도 고려할 문제는 여전히 많이 남아있지만 일일이 언급하기는 힘든 일이다.
암튼 지금의 내가 생각하는 채식은 딱 여기까지의 수준이다. 육식을 하지 않는다 해서 내 자신의 몸에 큰 문제가 없고, 내가 살아가는 환경을 존중하고 동물들의 생명도 가능한한 존중할 수 있다면, 고기를 먹는 즐거움이 줄어들긴 하지만 뭐 한번 해볼만한 가치는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말이다.
지난 6개월간 채식을 해보니, 뭐 앞으로도 계속 잘 할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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