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교회 오정현 담임목사가 지난 1월 14일자 국민일보에 '대운하와 문명사적 소통'이라는 칼럼을 기재했다. 운하를 통해 우리민족의 단절된 지역분열이 소통되길 소망한다며 그가 적은 글에 나오는 내용을 짧게 요약해보자.

* 에덴동산에서 원죄로 인한 아담과 하나님의 단절.
* 로마의 도로망건설.
* 중국의 만리장성.
*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을 소통하게 한 예수.
* 대운하의 본질은 문명사적 접근이 필요.
* 물길이 통하면 정신이 통하게 마련.
* 대운하의 소통의 시대정신이 북한, 연해주를 거쳐 민족의 발원지 중앙아시아의 해발
   1609산상의 이시쿨 호수에까지 뻗어나가길.
* 이집트의 나일강.
* 거대한 토목공사를 넘어 우리 민족의 역사와 창의성과 열정이 어우러져 동양의 예지
   와 서양의 합리성이 고도로 결합된 현장이 돼야 할 것.
* 갈릴리 호수와 사해.
* 우리 다음 세대 아이들이 천혜의 풍광 속에 있는 물길을 따라 국토를 일주하면서 시를
  쓰고 예술적 통찰력을 얻는다면 그곳이 생명의 소통으로 흐르는 물길이 될 것
* 대운하가 국력 결집과 우리 민족의 정신사적 소통을 이루는 생명의 물길로 자리잡기를
  소원.

이 글을 쓴 사람을 아무리 좋게 봐준다 하더라도 시인이고, 나쁘게 본다면 과대망상증 환자다. (시인을 폄하하고자 하는 의도는 전혀 없다)

옥한흠 목사의 '이명박 지지' 발언을 오해가 약간 첨가된 해프닝이라고 좋게 봐준다면 오정현 목사의 이 칼럼은 겉포장과 달리 한참 떨어지는 자신의 지적능력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오정현 목사의 본질 그 자체다.

예전에도 몇번 말했었지만 정치적인 식견이 다른 것은 그다지 상관이 되지 않는다. 의견이 서로 다르면 토론을 하거나 논쟁을 통해 잘잘못을 따져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비난의 여지가 주어지는 경우도 있겠지만 단순한 흑백 논리 선상에서 의견의 다름 그 자체가 곧바로 비난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

오정현 목사가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주요 공약에 제동을 걸거라고는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 그러기에 그의 이 칼럼의 기본 바탕인 '대운하 찬성' 자체에는 하등의 놀라울 만한 것이 없다. 놀라운 것은 그를 위해 그가 끌어들인 저 거창한 예시와 레토릭이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지하기 위해 그 자체의 본질에 대한 이해는 전혀 없는자들이 대표적으로 하는 짓이 바로 저처럼 소위 거창한 것들을 끌어들여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고 포장만 멋들어진 텅빈 상자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본질에 대한 이해도 없고, 자신이 믿는바를 설득시킬 논리도 없는 자들의 머리속은 거창한 것들을 갖다가 늘어놓으면 자연스레 자신의 믿는바에 권위와 당위가 주어진다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다.

경우만 놓고 본다면 오정현 목사의 예시와 레토릭은 UN본부를 판문점으로 이전시키겠다는 허경영의 공약 수준과 하등의 다를 바가 없다. 남북 문제나 세계 정세 문제, 남북통일이라는 복잡 미묘한 문제들 각각의 작은 세세한 부분을 파악할 능력이 없는 허경영에게 필요한 건 수많은 문제들에 대한 세세한 접근 없이 단칼에 아우를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다. 아이큐 430의 허경영에게 이러한 모든 문제는 판문점으로 UN 본부가 이전만 하면 저절로 알아서 풀리는 쉽디 쉬운 문제로 보일 뿐이다.

남들이 한반도 대운하에 대해 여러 경제,사회,문화적인 관점에서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우고 논의를 하는 것이 오정현에게는 우스운 일에 지나지 않는다. 대운하를 통해 민족의 정신사적 소통을 바라보고 있고, 예수그리스도의 소통하심까지 꿰뚫고 있는 오정현의 눈에는 다양한 관점에서의 토론이 마치 아이큐 430이 보는 아이큐 100짜리의 장난처럼 우습게 보일 따름이다.

칼럼에서도 말했듯이 오정현 자신은 '한반도 대운하'의 본질에 대해서는 이해하지도, 이해할 능력도 없다. 환경문제나 경제문제를 따져볼만한 최소한의 뇌가 오정현에겐 없다. 그정도의 지적수준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정현 목사는 어떻게든 '이명박 장로'의 공약에 한 힘을 보태주고 싶은 열정에 그의 장기인 거대담론을 끌어들여 본질에 대한 담론을 에둘러싸는 일을 한다. 이러한 오정현의 황당한 담론에 듣는이는 어이없어 하지만 정작 본인은 무척이나 뿌듯해하고, 감격해하고 비장해지기까지 한다.

내가 출석하고 있는 교회가 바로 이 과대망상증 환자가 담임목사로 있는 바로 그 교회다. 내가 꼬박꼬박 십일조와 헌금을 내고, 그것도 모자라 주일학교 교사 봉사까지 하면서 섬기던 교회가 바로 이 과대망상증 환자가 담임목사로 있는 교회다.

자신이 다니는 교회의 담임목사를 과대망상증 환자라 부르면서도 그의 설교를 듣고 아멘을 중얼거리고 교회의 시스템에 속해있다면 그 또한 내가 정신병자라 불릴 주된 이유가 될 듯 싶다. 단박에 그 교회를 박차고 나와야 하는지, 교회 안에서 담임목사의 사상에 물들지 않게 최대한으로 조심하며 다녀야 하는것인지, 아니면 뭔가 이런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노력해야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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