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도가 사람을 지혜롭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도가 사람의 무지를 보상해주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무지한 자의 기도를 하나님은 어떻게 들으실까.
무지로 인해 부정과 부패를 정의와 공의로 여기고 하는 기도는 과연 신실한 기도인가.
2.
육체노동을 직업으로 가진 적이 없는 나로서는 노동자의 마음을 다 이해할 순 없다. 한때는 민주노동당을 지지했던 적도 있고, 또 다른 한때는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향해 욕을 하기도 했다. 비교적 중도의 노선을 걷는 정당을 지지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하던 것과는 약간 차원이 다르다. 중도 노선의 정당이 따르는 정책의 호불호에 따라 지지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했다면 노동자 세력에 대해서는 이해와 공감의 부족함으로 인해 사실 그들은 변하지 않았는데도 내 기분과 상황에 따라 그들이 변질되었다고 비판한 적이 많았다.
적어도 그런 내 입장에서, 노동자 세력이 절대선으로 보일리는 없다. 꼬투리 잡으려고 들면 그들의 한맺힌 호소와 억울함의 토로속에서 인간으로서 누구나 갖고 있는 욕심과 거짓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실 현재의 내가 노동자 세력에 대해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마냥 장밋빛이 아닌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꼬투리만 보고 노동자 세력을 싸잡아 귀족노조니, 사상이 불순하다느니 하는 식으로 매도해버리는 비난을 나는 참을 수 없다. 힘있는 자에게는 갖다 댈 시도조차 하지 않고 눈을 감아버리는 비겁한 사람들이 자신보다 약한 자들에게는 한치의 양보도 없이 자를 대고 평가하고 판단해버리는 모순은 참기가 힘들다. 자신보다 힘이 있거나, 자신을 보호해줄 세력이라 생각하는 집단에 대한 비판에는 뭔가 오해가 있고 과장되어 부풀려졌다고 생각한다. 모든게 사실로 밝혀진다 하더라도 상황논리를 갖다대며 변호하기에 급급하다.
그렇게 이해심 많고 배려심 많은 사람들이 약자들에게는 전혀 다른 기준을 갖다 댄다. 오해가 있는 부분에 대한 해명엔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고 작은 잘못 하나를 침소봉대하여 붙들고 늘어진다. 힘있는 자들에겐 적용조차 하지 않던 도덕적 잣대까지 들이대어 윤리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는듯 판단해 버린다.
힘있는 자가 누군가의 뺨을 한대 쳤고,
힘없는 자가 누군가의 뺨을 한대 쳤다.
뺨을 때린 힘있는 자를 잘못했다 말하고, 뺨을 때린 힘없는 자를 잘못했다 말하거나, 빰을 때린 힘있는 자에게도 무슨 이유가 있겠지 하고 이해하려 하고, 뺨을 때린 힘없는 자에게도 무슨 이유가 있겠지 하고 이해하려 하는 사람은 적어도 자신 안에 모순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런 사람을 나는 탓할 마음이 없다. 자신 안에 모순을 갖고 있지 않은 진보주의자, 중도주의자, 보수주의자 그 모두를 나는 인정하고 존경한다.
둘 다 같은 잘못을 했지만 힘없는 자에게 심정적으로 좀더 공감을 하는 건 논리적으로는 모순일 수 있지만 인간적으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인간은 논리만 가지고는 살 수 없다'라는 상투적 선언은 이런 때를 위함이다.
뺨을 때린 힘있는 자에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더 나아가 힘있는 자가 지금 무슨 잘못을 한 것인지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뺨을 때린 힘 없는 자에게 손가락질하고 비난을 하며 정의와 공의라는 잣대를 들이대는건 정말 추악하기 그지없다.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죽이라고 소리치는 군중들 가운데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이러한 추악한 모순에 대한 일갈이었다.
3.
나라와 민족을 위한 애타는 심정으로 끊임없이 기도하는 그 진심에 감동받으려는 찰나, 같은 입에서 생존권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을 위한 조금의 안쓰러움도 없이 그들을 마치 악의와 욕심으로 가득차 사회를 불안하도록 선동하는 사람으로 말하는 것을 보며 잠시 멍했다.
기도만 하는 것이 능사일까. 무지한 상태로 간절히 기도만 하는 것이 과연 정말 능사일까?
다시 한 번 슬퍼졌다.
기도가 사람을 지혜롭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도가 사람의 무지를 보상해주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무지한 자의 기도를 하나님은 어떻게 들으실까.
무지로 인해 부정과 부패를 정의와 공의로 여기고 하는 기도는 과연 신실한 기도인가.
2.
육체노동을 직업으로 가진 적이 없는 나로서는 노동자의 마음을 다 이해할 순 없다. 한때는 민주노동당을 지지했던 적도 있고, 또 다른 한때는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향해 욕을 하기도 했다. 비교적 중도의 노선을 걷는 정당을 지지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하던 것과는 약간 차원이 다르다. 중도 노선의 정당이 따르는 정책의 호불호에 따라 지지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했다면 노동자 세력에 대해서는 이해와 공감의 부족함으로 인해 사실 그들은 변하지 않았는데도 내 기분과 상황에 따라 그들이 변질되었다고 비판한 적이 많았다.
적어도 그런 내 입장에서, 노동자 세력이 절대선으로 보일리는 없다. 꼬투리 잡으려고 들면 그들의 한맺힌 호소와 억울함의 토로속에서 인간으로서 누구나 갖고 있는 욕심과 거짓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실 현재의 내가 노동자 세력에 대해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마냥 장밋빛이 아닌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꼬투리만 보고 노동자 세력을 싸잡아 귀족노조니, 사상이 불순하다느니 하는 식으로 매도해버리는 비난을 나는 참을 수 없다. 힘있는 자에게는 갖다 댈 시도조차 하지 않고 눈을 감아버리는 비겁한 사람들이 자신보다 약한 자들에게는 한치의 양보도 없이 자를 대고 평가하고 판단해버리는 모순은 참기가 힘들다. 자신보다 힘이 있거나, 자신을 보호해줄 세력이라 생각하는 집단에 대한 비판에는 뭔가 오해가 있고 과장되어 부풀려졌다고 생각한다. 모든게 사실로 밝혀진다 하더라도 상황논리를 갖다대며 변호하기에 급급하다.
그렇게 이해심 많고 배려심 많은 사람들이 약자들에게는 전혀 다른 기준을 갖다 댄다. 오해가 있는 부분에 대한 해명엔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고 작은 잘못 하나를 침소봉대하여 붙들고 늘어진다. 힘있는 자들에겐 적용조차 하지 않던 도덕적 잣대까지 들이대어 윤리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는듯 판단해 버린다.
힘있는 자가 누군가의 뺨을 한대 쳤고,
힘없는 자가 누군가의 뺨을 한대 쳤다.
뺨을 때린 힘있는 자를 잘못했다 말하고, 뺨을 때린 힘없는 자를 잘못했다 말하거나, 빰을 때린 힘있는 자에게도 무슨 이유가 있겠지 하고 이해하려 하고, 뺨을 때린 힘없는 자에게도 무슨 이유가 있겠지 하고 이해하려 하는 사람은 적어도 자신 안에 모순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런 사람을 나는 탓할 마음이 없다. 자신 안에 모순을 갖고 있지 않은 진보주의자, 중도주의자, 보수주의자 그 모두를 나는 인정하고 존경한다.
둘 다 같은 잘못을 했지만 힘없는 자에게 심정적으로 좀더 공감을 하는 건 논리적으로는 모순일 수 있지만 인간적으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인간은 논리만 가지고는 살 수 없다'라는 상투적 선언은 이런 때를 위함이다.
뺨을 때린 힘있는 자에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더 나아가 힘있는 자가 지금 무슨 잘못을 한 것인지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뺨을 때린 힘 없는 자에게 손가락질하고 비난을 하며 정의와 공의라는 잣대를 들이대는건 정말 추악하기 그지없다.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죽이라고 소리치는 군중들 가운데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이러한 추악한 모순에 대한 일갈이었다.
3.
나라와 민족을 위한 애타는 심정으로 끊임없이 기도하는 그 진심에 감동받으려는 찰나, 같은 입에서 생존권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을 위한 조금의 안쓰러움도 없이 그들을 마치 악의와 욕심으로 가득차 사회를 불안하도록 선동하는 사람으로 말하는 것을 보며 잠시 멍했다.
기도만 하는 것이 능사일까. 무지한 상태로 간절히 기도만 하는 것이 과연 정말 능사일까?
다시 한 번 슬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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