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사진은 클리앙의 네오님이 찍은 사진이다.(클릭하여 확대해서 보면 더 보기 좋다) 네오님께 허락을 득하고 블로그에 퍼온다. 많은 촛불집회 사진중에서도 이 사진이 가장 마음에 와 닿는 이유중의 하나는 수많은 촛불과 대비된 소위 명박산성이라 불리우는 컨테이너 뒤의 텅빈 공간과의 묘한 대조때문인 듯 싶다. 또한 내가 앉아 밝힌 촛불 또한 저 사진의 한 곳에 있기 때문인 듯 싶다.
예상치 못한 양희은씨의 등장이었다. 듬직한 체구와 달리 겁이 많으신 분이시라고 알고 있었는데, 집회에 나올 줄은 정말 몰랐다. 저곳에서 양희은씨가 부르는 '아침이슬'을 따라부르는 데 괜히 눈물이 글썽거렸다. 당일 현장에서는 멀리 양희은씨의 실루엣만 보였는데, 위의 동영상을 보니 그때의 감동이 다시 되살아나는 듯 하다.
21년전 6.10항쟁때 나는 '전두환 대통령 각하'가 나라의 최고 어르신인줄로만 알던, 정말 아무것도 모르던 초등학생이었다. 나라가 혼란한지도 모르고,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사실도 모른채 딱지 몇장, 구슬 몇개 따는 데에 혼이 모두 빠져 있던 아이였다.
그 때 내가 살던 대전도 6.10항쟁의 열기가 꽤 뜨거웠던듯 싶다. 데모를 하다 도망친 대학생 아저씨가 피를 흘리며 도망치다가 우리집 초인종을 누르고 잠시 들어왔던 기억이 희미하게 난다. 욕실에 들어가 피를 씻던 것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리고 잠시 쉬다 갔는지, 아니면 바로 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또렷한 기억은 그 며칠후 그 대학생 아저씨가 어머니 되시는 분과 같이 다시 한번 우리집에 왔던 때이다. 아마 고맙다는 말씀을 그 대학생 아저씨의 어머니께서 나의 부모님께 하셨던 것 같다. 도데체 무슨 일이 돌아가고 있는지 전혀 파악할 수 없었던 어린 나는 그 와중에서도 뭔가 고마움을 표시하러 오시는 아주머니께서 혹시나 나한테 군것질이라도 하라고 몇백원이라도 주실까 소파에 가만히 앉아 대기중이었다. 희미한 기억이지만 그래서 그날 나는 천 몇백원인가 하는 악어장난감을 손에 넣게 되었다.
그때의 기억도 없고 경험도 없는데, 왜 이런 노래를 부르면 눈물이 나려고 하는 지 모르겠다. 이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가 단상에서 한말씀 하실 때에도 자칫 눈물이 흐르려는 걸 참았다. 21년간 아들을 잃은 슬픔에 견뎌오신 세월의 무게가 그분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서 무겁게 느껴졌다.
그냥, 점심시간이 되어 클리앙에 접속해서, 양희은씨가 부르는 아침이슬 노래를 들으며 다시 네오님이 찍은 사진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니 괜시리 눈물이 나려고 하길래 몇자 적어본다.
도데체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나의 눈에 눈물을 글썽이게 만드는 배후는 누구란 말이냐.
p.s. 아래는 6.10 촛불집회 다음날인 11일 아침 양희은씨가 진행하는 아침마당 오프닝이란다. 아침마당 진행하는 두분이 괜히 이웃집 아줌마, 아저씨처럼 친근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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