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와 일치'라는 표어를 보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과연 이 표어가 정말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뭘까'였다. 흔하디 흔한 일반명사로 이루어진 단순한 표어는 자세한 주해를 통해 풀어 읽기 전까지는 그 본래의 의미를 쉽사리 판단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전두환 정권 시절의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슬로건도 그렇다. 내가 볼땐 정의로운 사회를 뿌리뽑는 정권이었는데, 그 시절 정권이 요직에 있었던 사람은 그러한 무법천지의 통치행위를 놓고도 그것이 바로 정의사회를 구현하는 최선의 방법이었다고 지금까지도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슬로건만 믿고 '이제 박정희 독재 시대는 끝이 나고 이제 국민이 주인이 되고, 부패가 청산되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정의사회가 오겠구나'라고 해석하고 말 몇마디 잘못하고 행동거지 하나 잘못했다가는 뼈도 못추리는 일을 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튼 '화해와 일치'라는 표어도 괜히 나를 움찔하게 만드는 슬로건이었다. 과연 무엇을 '화해'라고 정의하고 무엇을 '일치'라고 정의하고 있는 '화해와 일치'인지를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고 그냥 내가 생각하는 화해와 일치의 개념을 그냥 대입시켜서 이해했다가는 나중에 큰 코 다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동경 사이타마 러브소나타에서 제가 설교를 통해 한국인의 피해자라는 오만에 대해 용서를 구했을 때 일본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고 마음을 열기 시작한 것처럼 화해는 엄청난 일치의 능력을 가져옵니다.


신년 특별 인터뷰라는 제목으로 첫 페이지에 큼지막하게 실린 인터뷰 내용중 위의 글을 보면서 비로소 그분이 말하는 '화해와 일치'의 의미에 대해서 대략적이나마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화해와 일치'의 개념과는 180도 다른 의미이다. 내가 이해하기 쉽도록 하려면 '분열과 독선'이라는 슬로건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이면 오히려 더 의미가 잘 다가올런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인은 피해자고 일본인은 가해자의 구도다. 그런데 오만한건 오히려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한국인이란다. 그래서 미안하다고, 용서해달라고 가해자인 일본인에게 용서를 구했단다. 피해자가 오만할 수도 있겠다. 피해를 당했으니 억울한 마음도 있고, 복수하고 싶은 마음도 있을 수 있겠다. 받은것 이상으로 돌려주고 싶은 마음도 있을 수 있겠다. 피해자가 무조건적인 선이고 가해자가 무조건적인 악이라는 구태의연한 틀을 깨야 한다는 의미에서라면 어느정도 수긍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에게 미안하다고 용서를 구하면서 화해한다는게 말이 되는건가? 백번 양보해서 가해자가 전혀 반성할 기미를 보이지도 않는데 피해자가 나서서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까지는 존경의 박수를 보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반성도 별로 하지 않는 가해자에게 피해자가 무릎꿇고 용서를 구한다니.

강간 당한 여성이 있고, 강간범이 있다. 강간 당한 여성이 상처를 이겨내고 오히려 강간범을 용서하고 화해를 구한다. 이것도 사실 상상하기 힘들다. 그런데 오히려 강간 당한 여성이 강간범에게 무릎을 꿇고는 '강간 당한게 별거라도 되는양, 큰 피해라되 되는양 제가 너무 오버했어요. 강간 한번 당했다고 방방 뛰고 난리쳤던 저의 오만에 대해서 용서를 구합니다'라고 말하는게 이해가 될 일인가.

이성을 뛰어넘는 종교적 차원에서 바라봐야 할 문제인가. 아니다, 성경 어디에서도 이런 식의 화해는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해주는 경우는 찾아 볼 수 있지만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경우는 내가 알기로는 성경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이런 식이라면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이 '그깟 선악과 하나 먹은게 무슨 큰 죄나 되는 양 에덴 동산에서 쫒아낸 나의 오만을 용서해줘'라고 해야 한다.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도 결국 죄를 지은 자를 사해주는 용서의 화해이지 죄를 지은 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이런 변태스러운 화해는 아니었다. 오른빰을 때린 자에게 왼빰까지 내주라는 것은 때린자를 용서한다는 차원에서의 행위이지 오른빰을 맞은 사람이 용서를 구하기 위해 왼빰을 내주는 것은 아니다.

그건 그렇고, 용서를 구할 처지는 되는가. 피해자로 남아있는 한국인들을 그분께서 대표할 수 있는건가. 아직도 피해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사람들이 가해자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해 억장이 무너지는 분들도 많을 텐데 그분이 떡하니 고상한 사랑과 화해의 종교성으로 용서를 구해도 되는 것인가.

말하자면 이렇다. 강간 당한 여성이 울고 있고, 가해자 강간범은 제대로 사과도 안하고 있는데, 갑자기 강간당한 여성의 오빠라는 사람이 와서는 동생의 찢어진 옷가지를 수습해주는 데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갑자기 가해자 강간범에게 '우리 동생 처신이 바르지 못해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순간의 일을 가지고 평생의 상처라는 식의 말까지 하면서 오만스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제가 대신해서 용서드립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해서 가해자랑 화해를 했다고 자랑하는거다. 나 대단하지 않냐고.

이런식이 '화해와 일치'는 이성적으로도 말이 안될 뿐만 아니라 그 어떤 고귀한 종교성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경우다.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것이라 하여 무조건 고귀하고 고매한 것이 아니다. 무식해서, 잘 알지 못해서 그런것도 아니다. 이건 그냥 변태적 성향일 따름이다.

한국인이 오히려 가해자인 경우도 많다. 화해를 하고 싶고 용서를 구하고 싶으면 찾아가서 용서를 구할 곳이 넘쳐난다. 사실상 시비걸 생각은 전혀 없지만 예를 들어 일본의 수많은 도시에서의 러브소나타를 하며 그곳에서 용서를 구하면서 복음을 파는 것보다는 베트남이나 연변이나 많은 이주 노동자들을 한국에 보내온 동남 아시아나 네팔이나 이런 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하며 용서를 구하는게 내가 이해하는 '화해와 일치'의 개념과 더 일치한다. 이렇게 용서를 구할 곳이 넘치고 넘쳐나는데 하필이면 가해자에게 먼저 달려가 용서를 구하면서 이를 고귀한 종교적 행위로 봐달라고 자랑까지 하고 있다. 자기의 치부를 자랑거리라 여기는 면에서는 치부를 드러내는 바바리맨의 정신상태와 다를바가 하나도 없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일본에서 하는 러브소나타에 대해서 시비를 거는것은 절대 아니다. 가해자보다는 피해자에게 먼저 복음을 전해야 한다 혹은 가해자는 복음에 대해 알 자격이 없다라는 식의 이의제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좀더 나아가면 난 이게 파워에 굴복하는 굴종적 자세를 숭고한 용서와 화해로 포장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는 생각도 든다. 일본의 국력이 우리나라보다 못하다면 이런 제스처를 취했을까?

이렇게 고매하고 고귀한 정신을 소유하신 그분께 가서 정말 물어보고 싶다. 촛불을 들고 정부의 정책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내던 많은 이들을 우매한 군중이라고 하고, 광기에 가득찬 사람들이라고 했던 본인의 발언에 대해 본인이 두손에 들고 있는 '화해와 일치'의 슬로건에 어울리게 용서를 구할 생각은 없는지 말이다. 가해자인 일본인에겐 앞서서 피해자의 오만에 대해 용서를 구하던 분이 이런 자잘한 것에 대해서는 쉽게 용서하실 수 있지 않을까. 용서를 구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과연 그분이 말하는 '화해와 일치'는 도대체 뭘 의미하는 것인지 들어보고 싶다.

이런식의 선택적이며 변태적인 '화해와 일치'라면 내생각에는 차라리 '갈등과 분열'이 오히려 낫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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