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


조선닷컴의 메인화면 기사의 제목뽑기 내공은 진실로 경이롭다. 어느 영화에선가 범죄자가 자신의 요구조건을 우편물에 담아 경찰에 보내온 장면을 본 기억이 난다. 영화속의 범죄자는 자신의 필체나 여타 다른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신문이나 잡지에서 오려낸 단어들을 조합하여 자신이 요구하는 내용의 문장을 만들어 보내왔다. 조선닷컴의 제목 뽑기는 흡사 이러한 단어 오려내기와 같은 수준의 제목뽑기 내공을 보여준다. 영화속 범죄자의 편지에 비해 조선닷컴의 더 치밀한 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제목 뽑기가, 실제 기사의 내용과는 정반대의 추측을 유도한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가 한두번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상 늘상 볼 수 있는 일이기에 대개는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은 특히나 그 내공의 출중함이 돋보여 캡춰해보았다.

현재 조선닷컴의 가장 첫 머릿 기사로 올라와 있는 기사는 미네르바 박대성씨의 1차 공판의 결과가 무죄로 나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네르바 박대성씨를 무료 변호해 온 박찬종 변호인이 그간 한 일이 바로 이 미네르바 박대성씨의 무죄를 이끌어내기 위함이다. 하지만 위의 머릿기사 제목은 그러한 박찬종 변호인이 1차 공판의 결과가 무죄로 나온 것에 대해 충격이었음은 물론, 이러한 무죄 공판을 내린 법원에 대해 미안하다는 의사를 표시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충격'이라는 단어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할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원하던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의 성사 확률이 극히 낮다고 생각한 경우에는 본인이 원하는 결과에도 충격받을 수 있다. 또한 원하던 일이 일어나지 않고 원치 않는 일이 발생했을 때에도 '충격'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기에 해당 단어만으로는 자세한 기사를 읽어보지 않는 이상 뚜렷한 의미를 파악하기 힘들다. 하지만 '법원에 미안'이라는 뒤따라 나오는 제목까지 읽게 되면 마치 박찬종 변호인이 원하던 것은 유죄였음에도 불구하고 무죄판결이 나와 충격을 받았고, 이러한 판결이 나오게 된 본인의 역할을 생각할 때 법원에 또한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듯한 뉘앙스를 느끼게 만든다. 시간이 없어 제목만 대충 읽고 넘어가면, 미네르바의 변호인인 박찬종씨마저 원치 않던 무죄판결이 나왔다는,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제목 뽑기다. 물론 조금만 해당 사건에 관심이 있다면, 이 앞뒤 맞지 않는 제목에 의아해하며 자세한 기사를 읽어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제목이다.

이러한 조선닷컴의 제목 뽑기는 정말 탁월하다. (순전히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제목만 읽고 그냥 넘어가는 독자들에게는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 일어났다는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어 미네르바의 유죄의 정당성에 대해 독자의 마음속에 방점을 한번 더 강렬하게 찍어주게 된다. '앞뒤 가릴 것 없이 미네르바는 유죄를 받아야 마땅한 죄인이다. 그의 변호인인 박찬종씨마저 무죄는 안된다고 하지 않는가!'. 좀더 이 사안에 대해 진지한 독자들에게 이 제목은 앞뒤가 맞지 않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제목이다. 미네르바의 변호인이라면 무죄 판결에 기뻐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충격을 받았음은 물론 법원에 미안한 마음까지 갖고 있다고 하니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결국 이러한 독자들은 추가 클릭을 통해 자세한 기사를 읽게 된다. 왠만하면 제목만 한번 쭉 훑어보고 가려는 사람을 잠시라도 더 사이트에 머물도록 만드는 대단한 내공이다.

박찬종 변호인이 왜 무죄판결에 충격을 받았는지, 무죄판결이 났으면 기뻐할 일이지 왜 말도 안되게 법원에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해당 기사를 읽으면 쉽게 알 수 있는 내용이니 자세한 설명은 여기서 하지 않겠다. 기사를 읽고나면 알아서 다들 조선일보의 제목뽑기에 혀를 차게 될 테니 구태여 내가 여기서 조선일보 치부를 상세히 설명하며 드러내지는 않아도 될 듯 하다.

어쨌든 해당 사건의 2차, 3차 공판을 거친 최종 판결이 어떻게 나올런지 또한 궁금하다.


'Impressions > The song of the earth'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못봤던 영상  (0) 2009/06/05
허울뿐인 '통합'과 '화합'  (6) 2009/05/29
조선일보의 재미있는 제목 뽑기 신공  (2) 2009/04/20
내공 부족  (0) 2009/03/18
마이너스 통장  (0) 2009/03/18
Credit Crisis  (2) 2009/02/23
◀ PREV : [1] : ... [45] : [46] : [47] : [48] : [49] : [50] : [51] : [52] : [53] : ... [378] : NEXT ▶

BLOG main image
Gustav Mahler(1860-1911)

공지사항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378)
Impressions (279)
About (84)
Photo (15)
Just for mahlerian (0)
Today : 9
Yesterday : 63
Total : 192,086
Statistics Gr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