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슨 심리 전문가도 아닐 뿐더러, 사회 현상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지도 않기에 단언할 수 없는 짧은 생각일 뿐이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최소한의 생계가 보장되지 않는 막막함에 처한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소식들 중 여럿은 그 죽음에 공감이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비단 경제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여러 다양한 상황 속에서, 마지막까지 잡고 있었던 무언가를 놓치게 되는 경우나, 무언가 하나라도 잡으려고 노력을 하지만 결국 잡지 못하는 것에 절망하는 상황이 이러한 공감의 경우에 해당할 듯 싶다. ‘공감’이라는 것이 다분히 감정에 대한 표현이기에 어떤 논리적인 설명이라기 보다는 막연히 ‘나도 저 상황과 똑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나라고 죽지 않고 버틸 힘이 있다고 자신하지 못하겠다’라는 면에서의 공감이다. 그 죽음을 정당화 한다거나 미화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다. 나는 살아있고, 그는 죽음을 선택한 이유가 나는 강하고, 논리적이고, 똑똑한 반면 그는 약하고, 감정적이고, 우둔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단지 나와 그가 겪고 있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 결정적인 차이일 뿐이라는 말이다. 여러 가지 이유들이나 종교적인 이유들로 인하여 같은 상황에 처해도 극단적인 선택에 있어 차이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 그 상황에서 처음 맞닥뜨리는 무기력과 절망의 감정의 크기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에서 나는 그런 죽음들에 공감한다.
물론 어떤 경우에 있어서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소식들 중에는 그 죽음에 공감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일이 일어나게 된 상세한 내용을 다 알 수 없는 제 3자의 한계라는 것이 있기도 하지만, 알려진 사실만으로 판단할 때에는 ‘나라면 저 정도의 상황에서라면 죽지 않고 버틸 수 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이 경우도 단지 그 죽음에 대하여 나의 공감이라는 감정적인 요소만을 따져보는 것일 뿐, 사건 그 자체의 옳고 그름을 따져가며 공감의 유무를 결정짓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래도 몇 가닥 잡고 버틸만한 것이 있을 것 같아 보였는데 왜 그것 마저 쉽게 놓아버리고 포기해버렸는가 하는 안타까움 뿐이다.
결국 이러한 공감, 비공감의 문제는 제 3자의 입장에서 제한될 수 밖에 없는 정보에 근거하였기에 지극히 개인적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모든 충분한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한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감정선 전부를 그대로 따라가며 유추해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여전히 개인적일 수 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그러한 모든 일들에 공감할 수도 있고, 아니면 모든 일에 공감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정보가 추가됨에 따라 공감이 비공감으로 바뀔 수도 있고, 비공감에서 공감으로 바뀔 수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들으며, 이전의 다른 어떤 사건 소식이나, 죽음의 소식을 듣던 경우, 믿을 수 없어 한동안 멍한 상태로 현실인지 꿈인지를 분간하는데 시간이 꽤 소요되던 내가, 바로 그분의 서거 소식을 현실의 실제 사건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분의 서거소식과, 아직 무슨 연유로 서거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상황임에도 그의 죽음에 대한 공감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니 노무현이 왜 죽어?’ 보다는 ‘결국 죽을 수밖에 없었구나’하는 탄식에 가까운 공감…수사보다는 언론 홍보가 앞서며 사실이 부풀려지거나, 있지도 않는 의혹이 자유방임언론을 통해 퍼져나가는 동안 그분이 마지막 잡고 있던 유일한 희망 한가닥이 그분의 손에서 빠져나감을 누구보다도 그분 자신이 가장 잘 느끼셨을 것이다. 차라리 권력을 탐하고, 재물을 탐하고, 탐욕을 부리는 삶을 살았더라면 지금의 상황에서도 그는 결코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잡고 있는 많은 가닥 중에서 명예나 자존심, 도덕성이라는 지푸라기 몇가닥 손에서 놓치게 되더라도 다른 것을 붙들고 끈질기게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권력의 최고 정점에서도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철저하게 부정하던 그 몸부림이, 재물과 탐욕을 맘껏 부려도 적당히 용서받을 수 있는 사회 구조에서 그래도 최선을 다해 이를 거부하려던 그의 몸부림이 결국 그의 손에 명예와 자존심, 상처나긴 했지만 그래도 영광스런 도덕심만을 쥐게 했다. 그리고 그가 재임시절부터 그의 손에서 놓아준 권력은 그가 손에 잡고 있던 마지막 몇가닥 지푸라기를 한가닥씩 뽑아버렸다. 그 모든 정황을 다 알 순 없지만 나는 노무현의 죽음에 백번 공감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분의 죽음을 정당화 하는 것도, 그의 죽음을 미화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가 왜 죽음을 선택했는지, 만약 내가 노무현이었고, 지금과 같은 상황에 처해 있었더라면 나 또한 그와 비슷한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감정적 차원에서의 동감을 말하는 것이다.
누구를 탓해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노와 슬픔의 감정 분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좀 더 천천히 생각할 일이다. 한 때 정말 열광적으로 지지하고, 언제나 그를 지지해왔지만 때론 침묵하기도 하고, 노무현 그분은 강한 사람이니 잘 이겨낼 거야 하며 무심하리만큼 관심을 거두던 때도 있었다. 지금에 와서 그분의 죽음을 미화하거나 정당화할 생각은 없다. 다만 찬찬히 생각하며 그가 살아서 했던 일들, 그분에 대한 평가들에 다소 왜곡이 있음을 앎에도 그냥 넘어갔던 부분에 대해 좀더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해봐야겠다. 정말 곰곰히 생각해봐야겠다.
노무현. 본인 평생을 통해 굳게 잡고 있던 소신이 치욕의 대상이 되어 조롱 받을 때, ‘노무현 저분은 앞으로 무슨 일이던 맘 편히 할만한 일이 없겠구나’ 하는 걱정을 하면서도 능히 노무현이라면 이겨낼 것이라 믿었는데, 그도 한 인간일 뿐이었다. 한 인간일 뿐인 노무현이지만, 그분은 분명 내가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이자 위인, 나의 영웅이다.
이럴 때일수록 격분하거나 흥분하지 말고 차분히 마음을 정리하자 다짐하지만, 조금 전 그분의 시신이 운구되는 장면을 보니 또 다시 참았던 눈물이 나온다. 나름 그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생각했지만 나도 모르게 ‘에이씨~죽긴 왜죽어!’라는 말과 함께 눈물이 흘러내린다. 12시간 잘 참았는데, 이제서야 눈물이 줄줄 흘러나온다...
다시 한 번 나의 영웅, 우리의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명복을 빈다.
'Impressions > Tragic' 카테고리의 다른 글
| Pilgrimage (4) | 2009/05/25 |
|---|---|
| 봉하마을 (2) | 2009/05/23 |
| 노무현, 그분도 나약한 한 인간이었다 (0) | 2009/05/23 |
| ▶◀ (4) | 2009/05/23 |
| 벌거벗은 임금님 (4) | 2009/03/08 |
| 이코노미스트가 바라보는 대한민국 (0) | 2009/03/0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