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해 유학준비를 하며 나름 빡빡한 시간을 보내면서 ‘일을 잘 끝내게 되면 꼭 이러이러한 일을 할 것이라’ 다짐했던 몇 가지 일들이 있었다. 대단한 일들이라기보다는 하루 종일 집에서 좋아하는 영화의 시리즈 전편을 다시 보는 것이라던가, 어디를 꼭 다녀오겠다는 식의, 사실은 아무 때에라도 맘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들 몇 개였다. 그런 별 것 아닌 일들이었지만 빡빡한 시간을 끝내고 난 후 찾아올 여유 있는 시간에 이런 일들을 하리라는 다짐은 작은 위안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한 여러 작은 계획 중의 하나는 이듬해 꽃피는 따뜻한 봄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살고 있는 봉하마을에 다녀오는 것이었다. 하루에 한 두 번 방문객들 앞에 나와 몇마디 담소를 나누는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싶었고, 퇴임 후 1년이 지나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있는 봉하마을 이곳 저곳을 그냥 슬쩍 둘러보고 오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작년 하반기부터 노무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여러 의혹들이 불거져 나오면서 결국 작년 늦은 가을 방문객과의 만남은 중단되었다.
그래도 시간이 흘러 따뜻한 봄날이 되면, 다시금 봉하마을에 가게 되면 그의 얼굴과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따뜻한 봄이 오고, 여름이 가까운 최근까지도 기대했던 일은 소원해 보일 뿐이었다. 기대했던 일들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지만 그래도 한번 다녀올까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으나 서울에서 봉하마을까지의 거리도 꽤나 되는 데다가, 그냥 휑한 시골마을에 그냥 다녀온다는 것 자체로는 별다른 의미도 없다 생각되어 얼마 전 봉하마을 방문 계획을 접어버리고는 대신에 계획했던 다른 곳들을 다녀오는 것으로 계획을 정리했다.
그렇게 몇 곳을 잠시 들르는 짧은 여행의 구체적인 일정을 잡은 것은 5월 초였고, 그 일정은 바로 다음주 월~수로 잡아 놓았다. 하지만 한달 전 잡아놓은 일정을 2일 앞둔 오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들려왔고, 봉하마을에는 그의 빈소가 차려졌다. 작년 한 해 그토록 들뜬 마음으로 한 번 가고 싶었던 봉하마을이었고, 작년 말부터 불거진 일들로 봉하마을 방문의 마음을 접었던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일로 봉하마을을 갈 것인지를 고민해볼 것이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 그 먼곳에 간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지도 모르겠고, 이런 기분으로 그곳을 가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마도 다음주 계획해 놓았던 일정을 조정해 봉하마을에 다녀올 것 같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작년 이맘때 시간을 내서 다녀올까 생각했을 때 훌쩍 다녀왔으면 좋았을 것을….어찌 되었든 이미 이곳 저곳 들르기로 시간을 내어놓은 일정인 만큼 그곳에 가서 그분의 빈소에 분향하고 명복을 빌고 돌아와야겠다. 그를 정말 좋아하고, 존경하고, 지지했던 한 개인으로서, 떠나는 그분에게 예를 표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으로 작은 위안을 삼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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