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클린 플래너를 사용한지 5년째 되는 것 같다. 가장 큰 사이즈인 클래식 사이즈에, 바인더도 작년엔가 가죽 바인더로 장만했다. 영업하는 사람들에게나 어울릴만한 큼지막한 크기에, 무게도 꽤나 나간다. 줄곧 다니는 곳마다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니지만 사실 이곳에 적는 내용은 거의 없다. 몇년전만 하더라도 하루 계획도 적고, 이것 저것 기록할 만한 것들을 적곤 했는데, 요즘은 거의 텅 빈 상태로 매일의 페이지가 지나간다.
기껏 적는 것이라곤 달력에 각종 기념일들 적어놓는 것과, 하루하루 사용한 돈, 운동한 시간, 들었던 음악, 영화, 드라마 등등을 적어놓는 것 정도다. 가끔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게 되면 구매한지 일주일 되는 날짜의 란에 물건이 제대로 도착했는지 확인하는 내용을 적어 놓는 것 까지 포함하면 내가 프랭클린 플래너에 적는 거의 모든 내용이 포함된다.
플래너에는 보통 3달치 용지를 넣어놓는다. 현재달과 앞으로 올 두달 이렇게 세달이다. 11월이 시작된 엊그제, 지나간 10월 용지를 빼내고 나니 12월 다음에 넣을 1월 용지가 없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리곤 별 생각 없이 내년에 사용할 1년치 용지를 다시 주문했다.
잘 사용하던 것이라 하더라도 한동안 사용하지 않고, 또 앞으로도 별로 사용할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하면 난 정이 들었던 것도 쉽게 버린다. 오랜 자취생활을 통해 깨달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학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을 전자공학 전공으로 옮길때만 하더라도 학부시절에 공부한 기계공학 지식들이 필요한 때가 올거라 생각했기에 왠만한 전공 책은 상자에 넣어서라도 부여잡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기계공학과 관련된 책은 별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과감히 버렸다.
이사를 두번이나 다니면서도 5년간 꼬박 모아오던 'Classic CD Guide'라는 잡지도, 결국 몇년간 한번도 들춰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결혼전에 동호회 사람에게 그냥 넘겨버렸다. QT책에 아무리 정성스럽게 하루하루 느낀것을 적어놓아도 그 달이 지나면 과감히 쓰레기통에 버린다. 괜찮은 내용으로 가득찼다 하더라도 한번 읽은 잡지는 기한이 지나면 그냥 버린다. 짧은 인생 살아보니, 그런 것 부여잡고 있어봤자 언젠가는 버려야 할 때가 오더란 것을 알게 되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프랭클린 플래너도 사실 생각해보면 굳이 내년 것을 살 필요가 없다. 거의 쓰지도 않고 백지상태로 넘어가고 있는데, 일년치 용지에 2만원이 넘는 돈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별로 쓸데 없는 일일터이다. 그러면서도 아무 고민없이 다시 또 내년치 플래너 용지를 사는건, 그래도 또 어느때가 되면 플래너를 알차게 사용할 날이 올 것이라는 생각만큼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 생각마저 들지 않는다면 아무리 비싼 돈주고 산 가죽 바인더가 남아 있다 하더라도 과감히 버려버렸을 것이다. 몇년전 정신없이 바쁠때, 그나마 좀 제대로 플래너를 사용하면서 참 괜찮은 녀석이다 생각했던 그 기억... 점점 더 바쁜 삶인데도 큰 계획없이 지내는 요즘을 보면 내년에는 좀 충실하게 녀석을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 지난 5년간 사용한 용지는 1년단위로 보관할 수 있는 바인더에 모두 고이 모셔 있는데, 지나간 것들은 이제 가장 옛날것 1년치부터 슬슬 버려야겠다.
'Impressions > Song of the Night'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어떻게 비판할 것인가 (2) | 2006/12/12 |
|---|---|
| 침묵의 이유 (0) | 2006/12/07 |
| 비슷하지만 너무 다른... (3) | 2006/11/07 |
| 한해가 또 흘러간다 (0) | 2006/11/03 |
| 방심하다 당하다 (0) | 2006/10/30 |
| 야고보서 강해설교 (6) | 2006/10/2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