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밑의 '머리가 멍해진다'라는 글을 적으며 캡춰를 해온 사랑의교회 건축 사이트의 같은 페이지 중간 즈음에 아래와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


기도하는 가운데 드리십시오.
믿음으로 드리십시오.
오병이어의 기적을 기대하십시오.


동일한 페이지에 다양한 유치찬란한 문구로 선동하고 있는 헌금 작정에 대한 안내 글귀와, 지난 주일 설교에서 오정현 목사가 예상보다 많은 헌금 약정 금액이 이루어진 것에 차주 주일을 할렐루야 주일로 삼겠다는 말들에 근거해보면 위의 오병이어의 기적은 일차적으로 헌금약정 금액에 관한 것이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최선을 다해 가진 것을 헌금 할 때 성도 개개인의 삶에 오병이어와 같은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는 말로도 해석될 수 있다. 설교 중에서도 부담스러운 헌금을 드린 후 놀라운 기적과도 같은 삶의 변화를 체험한 이야기를 몇개 예화로 들었다 하니 그렇게 해석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두가지 경우 모두에 대해 오병이어의 기적을 예로 드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인가? 뭔가 몇배로 뻥튀기가 되었다는 처음과 끝의 결과가 단순히 일차적으로 같다고 해서 모든 상황을 오병이어의 기적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인가?

일단 성경의 오병이어 기적 본문을 한번 옮겨와 본다.


<요한복음 6장 1~15>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3.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4.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14.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몇가지 질문을 해보자. 이 본문이 과연 작은 헌신을 몇십배 몇백배로 보답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 예수님의 일하심을 말하고자 하는 본문인가?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이 몇배로 보답하시니, 가진 귀한 소유를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메세지를 던져주는 본문인가?

일차적으로 이 본문은 아무것도 한 것 없는 우리를 긍휼이 여기신 주님께서 아무 댓가 없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사랑에 대한 본문이다. 어제 아내와 대화시 아내가 나에게 말해준 것처럼 이 본문의 핵심은 군중들이 굶주려 있는 것을 보신 예수께서 군중을 긍휼이 여기사 친히 먹이신 것이다. 설교시 본문으로 사용될 때에는 적용포인트를 찾다보니 드려진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의 헌신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설령 이 음식을 가져온 아이가 스스로의 먹을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 앞에 드리는 놀라운 헌신을 했다 하더라도 이 본문은 그런 이 아이의 행위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냥 안드레가 눈 앞에 앉아 있는 어린애가 갖고 있는 도시락을 보고 예수께 한마디 건넨 것이라 보아도 전혀 무리가 없다. 진정 이 본문이 작지만 정성스러운 헌신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말하고자 하는 본문으로 저자가 선택했더라면 아이의 헌신에 좀더 포커스를 맞추었을 것이다.

좀더 시야를 넓혀보면 이 본문의 내용은 더욱 분명해진다. 배불리 먹은 사람들은 누구인가. 아무것도 내놓지 않은 오천명의 군중이다. 예수께서는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최고급 소고기 스테이크로 바꾸셔서, 가져온 아이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다. 이 기적으로 배불리 먹은 자들은 예수의 말씀을 듣고자 먼길을 떠나 따라오면서도 끼니 때울 음식조차도 가져올 생각도 하지 못한 어리석기 짝이 없는 군중들이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헌신을 보시고 먹이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배고픔을 긍휼이 여기시고 아무 값없이 배불리 먹이신 것이다.

이 본문을 제대로 읽는다면 이 본문을 통해 깨달아야 할 것은 내가 어떻게 작은 것이나마 주님께 드려야 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이 본문을 통해 깨달아야 할 것은 나를 불쌍히 여기사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주님의 긍휼과 사랑에 감동하고 감사하는 것이 보다 옳바른 방법이다. 이 본문을 스스로 묵상하는 가운데 주께 드리는 헌신을 깨닫는 것은 그나마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본문을 들고 헌신과 희생을 강조하고 거룩한 부담감이라는 무게 있어 보이는 수사를 사용하면서 건축 헌금을 권유하는 본문으로 이용하는 것은 명백히 사기다. 주님의 값없이 주시는 사랑의 장면에서 우리가 주님께 최선을 다해 드려야 한다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조차 모욕적인 언사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의 본문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사랑의교회처럼 건물이 비좁고 성도들은 넘쳐나고, 주차 공간도 없고, 교육공간도 턱없이 부족하여 새로운 건물 건축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때, 그 모든 필요를 아시고 긍휼이 여기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촛점을 맞춰야 했을 것이다. 적어도 차 한대에 해당하는 금액을 헌금으로 드리는 것은 어떻겠냐고, 한달에 벽돌 300장씩 3년이면 1억 800만원이라는 식의 선동. 원숭이와 북을 동반하고 돌아다니던 엉터리 약장수나 늘어 놓을 것 같은 식의 선전은 하지 말았어야 한다.

본문에도 이러한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 이가 한 명 보이는데 바로 빌립이다. 예수께서는 무리들의 굶주림에 안타까움을 말씀하시지만 빌립은 그러한 예수님의 긍휼을 깨닫지 못하고 이백데나리온으로도 굶주림을 해소하기엔 턱없을 것이라는 말을 건넨다. 사랑의교회 성도수에 비해 건물이 절대적으로 비좁다는 것 인정한다. 필요하면 건물도 지어야 한다는 거 인정한다. 그 필요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랑의교회에서 이러한 필요성을 채우기 위해 진행하고 있는 건축, 그리고 그 건축을 위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이뤄지는 일련의 헌금 권유의 수많은 문구들이 나에게는 저들이 근거중의 하나로 내어놓은 오병이어의 기적의 내용과 어쩌면 저리도 상충될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실제 건축이 이뤄지면 돈이 필요한 것도 알겠다. 현실적인 일이니 그냥 앉아서 기도만 한다고 건물이 세워질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왜이리 저와 같은 강요에 가까운 헌금을 권유하며 건축의 시급성에 대해 말하는 것이 오병이어의 빌립과 겹쳐지는 지 모를 일이다. '지금 건물로는 부족합니다. 미래의 비전을 위해, 다음 세대를 위해 지금의 공간으로는 턱없습니다. 더 큰 사역을 감당해야 하는데, 1300억정도는 필요합니다. 그 이하로는 가망 없습니다'.

도대체 오병이어의 기적을 기대하라는 말은 뭘 의미하는 걸까? 하나님이 뜻하신일? 다음 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 아, 그런거요? 근데 그거 제가 생각하니 지금 있는 기존 건물로는 택도 없을 것 같은데요? 일단 제가 생각할 때에는 하나님의 비전 이루기 위해서는 최소 1300억원정도는 있어야 좀 가능성이 그나마 있을 것 같은데요? 빌립의 숫자계산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으면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기대하라는 모순에 어이가 없을 뿐이다.

사람들의 굶주림을 보시고 긍휼이 여기사 먹이신 주님의 사랑의 깊은 마음을 먼저 깨닫기 전에 배불리 먹었다는 그 표면적 결과에만 집중하여 예수를 높이려 하자 예수께서는 조용히 그들의 곁을 떠나가신다. 주님의 우리를 향한 긍휼하심, 그 분의 사랑에 대해 집중하는 여유도 갖지 못한 채, 목표했던 금액 이상으로 1300억원이라는 헌금 약정액이 이뤄졌다는 것만으로 당장 다음주를 할렐루야 주일로 갖겠단다. 1차적으로 눈에 띄는 건 주님의 긍휼하심보다는 1300억원에 더 촛점이 맞춰져 있는듯한 어투다. 예상치에 미치지 못한 헌금 약정액이 나왔더라면 다음주는 보다 더 심각한 분위기를 연출하여 목표액을 맞췄을지도 모를 일이다. 일단 배불리 먹었다는데에 흥분하던 것이나 1300억원 약정됐다고 할렐루야 하는 것이나 내 눈에는 다 그게 그거다. 할렐루야 외치고 기뻐하고 있지만 예수께서는 조용히 그들의 곁을 떠나 산으로 홀로 가실 지도 모를일이다. 수만명 성도가 모여 할렐루야를 외치는 다음주, 그곳에 예수께서는 불참하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내 생각으로 오정현 목사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성경속의 사건으로 믿을지는 몰라도 현실에서의 일어날 수 있는 기적으로는 믿지 않는 것 같다. 자기 끼니 때울 먹을 것도 챙겨오지 못한 어리석은 군중들을 먹이시는 긍휼하신 하나님이신데, 이건 마치 '최소 이틀 먹을 음식 준비하지 않으면 따라올 생각도 마라'는 식 같다. 어린애가 허리춤에 차차고 있던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 오정현 목사의 눈에 오병이어는 최소 승용차 한대 값은 되어야 한다. 벽돌도 한장에 만원하는 명품 벽돌 아니면 어림도 없다. 1억 800만원 정도는 있어야 기적을 바랄 수 있다. 그 이하를 가지고 기적을 바라는건, 오정현 목사의 논리에 따르면 믿음 없는 연약한 자의 착각일 따름이다. 명심하시라. 1300억원 정도는 있어야 바랄 수 있는게 오정현 목사가 말하는 오병이어의 기적이다. 혹시 가진게 정말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 밖에 없는가? 나라면 남들 못보게 조용히 숨기고 그냥 집에 가서 드시는 것을 추천하겠다. 조심하지 않으면 큰 창피 당하실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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