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란다는 말처럼, 난 도통 뭐 묻은 개가 거의 비슷한 수준의 더러움에 대해 지적하는 것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대개는 이러한 것들이 내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바 주로 입을 다물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내가 혐오하는 그 무엇이라 하더라도 한참 욕을 퍼붓고 난 후 정적의 시간에 찾아오는 것은 나도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적어도 상대적 우위는 내가 갖고 있을지라도 보다 큰 틀에서 보면 미미한 차이라는 생각들이었다. 아니, 내가 생각하는 상대적 우위라는 것도 사실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개념인 경우 또한 많았다. 결국 그런 결론은 나로 하여금 침묵하도록 했다. 침묵할뿐만 아니라 입을 여는 타인을 향한 혐오의 감정도 느끼곤 했다.
하지만 그러한 나의 생각도 하나의 관점일 뿐, 누구나 동의하고 따라야 하는 궁극적 결론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요즘들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음식을 할 줄 모르는 사람도 음식의 맛을 보고 음식의 수준을 평가하고, 비판할 수 있듯이 꼭 내가 상대적 우위에 있어야만 비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제대로 할 줄 아는 음식이 없다는 이유로 자신이 먹어야 하는 음식에 대해서도 자신이 만들 수 있는 수준 이상의 음식이라면 그 절대적 수준이 어떠하건간에 비판할 수 없다는 것은 얼마나 가혹한 일인가.
돈을 지불하고 음식을 사먹는 경우에는 내가 음식을 전혀 못한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당당할 수 있다. 내가 돈을 지불할 의도를 갖고 예상했던 수준과는 현저히 차이가 나는 음식일 경우 당당하게 항의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비난을 하는 것 또한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
누군가 나에대한 순수한 호의를 갖고 음식을 접대하는 경우라면, 사실 중요한 것은 음식의 수준이 아니라 접대하는 이의 성의와 마음가짐이 우선이다. 아무리 음식의 수준이 높다고 하더라도 호의에서라기보다는 다른 음흉하거나 교활한 의도를 갖고 있을 때와, 음식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음에도 접대하는 이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호의를 갖고 접대할 때의 내가 취해야 할 태도는 상당히 다르다. 음흉하거나 교활한 의도로 접대된 고급 음식의 경우 상을 뒤집어 버리는 것까지도 가능할 수 있으나, 진심에서 우러나온 호의로 접대한 저급 음식의 경우 감사하게 받는 것이 좋다. 물론 이 경우에도 음식의 수준에 대해 비판할 수 있지만 이 때는 적어도 나 또한 예의와 정중함을 갖고 해야 한다.
각자 만든 음식을 갖고 서로 점수를 매겨야 하는 경우, 이때는 고려할 다른 요소 없이 순수히 음식의 완성도만을 갖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이 때에도 내 음식의 완성도가 떨어져도 타인이 요리한 음식의 부족한 점에 대해 지적할 수 있다. 이러한 발전적인 지적은 그곳에 참가한 모든 이에게 한단계 더 상승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자기의 음식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도 파악하지 못한 채 타인의 음식에 대해 비판을 넘어 비난과 조롱을 한다면, 결국 자신만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정리하면,
1. 나의 음식 수준이 타인의 음식 수준에 대해 지적하는 데 있어 어떤 한계조건이 될 필요는 없다.
2. 때론, 형편없는 음식에 대해서도 예의와 정중함을 갖고 지적해야 할 때가 있다.
3. 때론, 음식 자체가 주요한 소재는 될 지언정 주요한 주제로서의 요건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아직까지는 1번에 대해서만 정리가 된다. 2,3번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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